현재 위치 : 말씀영상 > 칼 럼
광야에서, 찬양은 기도가 되더라!
영화<신의 악단>을 보고 한동안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이 터진 건 아니었지만,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눌린 느낌이 오래 남았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여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끝까지 사랑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붙잡을 수 있는데 붙잡지 않고, 살 수 있는데 대신 보내는 선택. 그 장면 앞에서 마음속으로 계속 중얼거리게 되었다.
“이건..광야다.” 우리는 광야를 싫어한다. 아무것도 안 되는 시간. 기도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날들. 왜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 싶은 자리. 광야에 서면 질문이 쏟아진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지?”
“이 길이 맞긴 한 걸까?”
그런데 성경은 광야를 뜻밖의 이름으로 부른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Midbar)’다. 이 단어의 뿌리는 ‘다바르(Dabar)’, 곧 ‘말씀’이다. 아이러니하다. 아무것도 없는 곳 같은데, 사실은 말씀이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곳이 광야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광야에서는 의지할 게 없다. 지도가 없다. 사람도, 환경도, 계획도 다 벗겨진다. 그래서 남는다. 하나님과 나, 그리고 말씀.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광야로 보내신다. 미워서가 아니라, 버리려고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들리지 않는 말을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는 기도가 달라진다. “이것 주세요”라는 기도가 점점 사라진다.
대신 이런 말이 남는다.
“주님… 그냥 여기 계신 것 맞죠?”
“제가 잘 가고 있는 거죠?”
“놓아도 되는 거죠?”
그때 찬양이 바뀐다. 입술로 부르던 노래가 가슴에서 새어 나오는 기도가 된다. 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음정이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눈물 섞인 숨결로 부르는 그 고백이, 하나님께는 가장 진한 찬양이 된다.
영화 속 사람들처럼, 광야에 선 우리는 결국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붙잡고 버틸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는 용기를 낼 것인가. 광야는 답을 빨리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히 가르쳐 준다.
“붙들지 말고 맡겨라.”
“네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을 내려놓아라.”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광야는 잔인한 곳이 아니다. 아프지만, 거짓이 사라지는 곳이다. 외롭지만,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자리다. 혹시 요즘, 찬양이 잘 안 나오고 기도가 자꾸 막힌다면, 어쩌면 지금 당신은 광야 한복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말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미드바르에는 다바르가 있다. 광야에는 말씀이 있다.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면 알게 된다. 그 광야에서 부르던 찬양이 가장 진실한 기도였다는 것을. 그 기도가 우리를 끝내 무너지지 않게 붙들었다는 것을. 광야에서, 찬양은 기도가 된다. 그리고 그 기도는, 사람을 살린다. 할렐루야!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교회안내 ㅣ 예배안내 ㅣ 오시는 길 ㅣ 이용약관 ㅣ 개인정보취급방침
주소 : (14344) 경기도 광명시 일직로 12번길 11, 서현빌딩 6층 꿈꾸는교회 TEL : (교회) 02-897-3194, 02-899-2742